“본래 공주군 남부면의 지역에 자기소가 있어서 사기막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지막골 또는 금학골, 학동이라 하였습니다. 금상나루 안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이 검상골이고 이곳에 나루가 생김에 따라 마을이 생겼는데 나루의 이름을 따서 검상골이라 불리는 검상동이 있고 봉황낙지라는 좋은 묏자리가 있다고 붙여진 이름의 봉정동과 옛날에 오동나무가 많다고 불린 오곡동, 배의 꼬리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주미동, 숙종의 태를 묻었다고 해서 태봉산이라 하여 붙여진 태봉동까지 6개 법정동을 관장합니다.
금학동의 지명유래
조선말에 공주군 남부면 지역으로 자기소가 있어서 사기막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지막골 또는 금학골, 학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에 따라 학동, 하선리, 지막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금학리라 하여 주외면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10월 1일 주외면이 폐지되어 공주읍에 편입되고 금학정이 되었는데 1947년 동명의 변경으로 금학동이 되었습니다. 1986년 1월 1일 공주읍이 공주시로 승격되어 공주시 금학동이 되었습니다.
마을자랑거리
금학생태공원
- 금학수원지 일원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유휴시설을 활용하여 깨끗한 수질환경을 조성하고 생태관찰 학습공간 및 산책로를 설치하여 시민들께 휴식공간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2010. 10. 준공이 되었지만 주차시설이 부족하여 대대적인 홍보를 못하고 있다가 2011. 11. 생태공원 입구에 주차시설이 완공되었으니 많이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우금치전적지
- 이곳 우금치는 1894년 동학혁명군 최후의 격전지/전적지입니다.
1894년 1월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을 선두로 봉기한 동학군은 그해 4월 전주를 점령하고 호남일대를 장악하였으며 10월에 다시 봉기하여 북상하였는데 그 첫 목표가 호서지방의 요충이며 충청도 감영소재지인 공주를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공주의 남쪽 관문인 이곳 우금치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당시 동학군은 대외적으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항한다는 기치를 높여 들었기 때문에 일본은 현대식 무기를 가진 강력한 군대를 파견하여 여기에서 동학군을 저지하였습니다. 이 전투는 1주일을 밤낮으로 계속하였는데 약 10만 명을 자랑하던 동학군은 겨우 1천여 명만이 살아남는 참패를 당하고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메뉴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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